충격과 공포? 한숨과 자괴? "친일문학론"


1966년 7월 30일 발행된 '친일문학론' 임종국 저
(...1966년 디자인인데, 어째서인지 에반게리온의 '사도'가 멀뚱거리며 쳐다보고 계시는 것이 이미 예사롭지 않은 포스를 풍긴다.)


(그러니까 얘... -_-;;)



(1966년 초판 발행부수가 1,500부...  국내에선 금서 취급을 당한터라 대략 4 : 6 정도로 오히려 일본에서 더 잘팔렸다는 전설이 붙어 있음. 일설에 의하면 초판 1,500부를 소화하는데 13년이 걸렸으며 그 중 500여권만이 국내에 팔렸다고 한다. ...오, 그렇다면 나름 레어를 소장한것인가? -_-;;)

이 책은 그 명성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수의 책이 돌아다녔으며, 비교적 최근에야 다시 재간이 되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문학계 자체에서 금기시 되었을 이유가 있는 책이다. 문학계를 지탱하던 인사들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새로 재간이 되기 전까지는 딸랑 이 초판본이 전부였으나 의외로 입소문을 타고 서로 서로 주고 받으며 읽은 탓에 읽은 사람의 수는 초판본의 수를 당연히 압도한다.
 
아무튼,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내 심정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그러니까 이런 심정? -_-;;)

최남선, 채만식, 모윤숙, 이광수, 노천명, 정비석, 김동인.... 그 외의 쟁쟁하디 쟁쟁한 문학계의 거두들...
이들이 써 갈긴 글들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솔까말, 이 따위로 점령국에 고아하고 아름다운 찬미가를 바친 문학가들이 고스란히 살아남하 후진 교육에 매진하는데다 온갖 찬란한 명성을 유지했던 나라가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골수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대충민족주의자 정도는 되는데다 우리 때만해도 "여러분 대한민국은 단일민족국가이니 우리 모두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쳐 BoA요... 자~ 평화의 댐 성금~" 등을 외치며 "동포 아이가?" 교육으로 세뇌되어 있던 때라 배신감은 더욱 더 컸다.
(그래서 비뚤어졌다. -_-;)
 
머... 충격적인 문장들이 많지만 우선 쉬어가라는 의미로...
일단 유명하신 분 중 한 명인 춘원 이광수의 시 한 편 감상하고 넘어가겠다.

- 이광수 "선전대조(宣戰大詔)"  (1942년 1월 신시대) -
 
'미국과 영국을 쳐라'
하옵신 대조를 나리시다
12월 8일 해뜰 때
빛나는 소화 16년

하와이 진주만에
적악을 때리는 황군의 첫 벽력

웨스트 버어지니어와 오클라호마
태평양 미함대 부서지다

이어서 치는 남양의 해공육
프린스.업.웨일즈 영함대 기함
앵글의 죄악과 운명을 안고
구안탄 바다 깊이 스러져 버리다.

아시아의 성역은 원래
천손 민족이 번영할 기업

앵글의 발에 더럽힌 지 2백년
우리 임금 이제 광복을 선하시다.

...........
명문 되시겠다. -_-

더욱 명문인 미당 서정주 선생의 '송정오장송가'도 있긴한데, 아무래도 '친일문학론'에선 서정주의 시가 빠져있는 것 같다. 몇 몇 분은 여기서 봤다고 하시던데 몇 번 훑어봐도 가장 뒤 쪽 색인에 제목만 존재할 뿐이다. (혹시 있다면 몇 페이지 쯤에 있는지 제보 좀 부탁한다능...)


(책 뒤에 서정주가 '송정오장송가'를 '매일신보'에 1944년 12월 9일 개제했다고 표시되어 있다. 2006년 출간된 '임종국 평전'에선 서정주 챕터가 빠진 이유가 쓰여있다고 했는데, 아직 읽어보질 않아서 왜 빠졌는지는 모르겠다.)
("송정오장송가"를 읽고 뒤집어지고 싶다면 전문은 여기.)

이 책을 읽다보면 왠지 아스트랄한 세상에 빠져들고 만다. 
보다보면 환장하게 웃긴 문장도 있고, 졸라 열받는 문장도 있긴 한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 존경하라고 교과서에 떡 실어놓는게 문제다. 가끔은 이런 분들 사상과 문장을 공부하느니 '투명 드래곤'의 허탈함에 대해 공부하는게 1.1배 정도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인물도 교과서에서 빠지지 않는 주요 시인이다.


- 노천명. "싱가포울 함락" 중 1절. (매일신보 1942년 2월 19일) -

아시아의 세기적인 여명은 왔다
영미의 독아에서
일본군은 마침내 신가파를 뺏아내고야 말았다

동양 침략의 근거지
온갖 죄악이 음모되는 불야의 성
싱가포울이 불의 세례를 받는
이 장엄한 최후의 저녁

싱가포울 구석구석의 작고 큰 사원들아
너의 피를 빨아먹고 넘어지는 영미를 조상하는 만종을 울려라
( 싱가포울 함락 전문은 여기 )
.............
아아... 그도 사슴을 사랑하고, 나도 사슴을 사랑했건만, 싱가폴에 위장 전입을 가시다니(...응? -_-)...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으셨으면 좋았잖아염...
후후후. -_-;
이 외에도 그를 재능을 증거하는 글들이 더 있어서 나를 슬프게 한다.

다음은 이 분 글을 좀 살펴볼까?
이른바 모 배꽃 대학(...)의 일부 꽃꽂은 아낙네들이 무려 한국 패미니스트의 선두 주자라고 주장하며, 애국 지사라고 바락 바락 우겨대고, 아직도 그 이름의 상을 수여하길 거부하지 않는....

(어이쿠 우리 모여사님, 그러셌세여? -_-;;)

- 모윤숙, "호산나, 소남도" 중 1절 (매일신보 1942년 2월 21일) -

2월 15일 밤!
대아시아의 거화!
대화혼의 칼을 번득이자
사슬은 끊기고,
네 몸은 한 번에 풀려 나왔다
처녀야! 소남도의 처녀야!
.....
("호산나, 소남도"의 전문및 그 외 모윤숙의 친일 관련 시를 보고자 하면 여기 )

그리고, 저 뒤에 있는 "여성도 전사다"라는 글도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길.
송미령 까는 부분도 재밌지만(...요즘 식으로 요약해보자면 "ㅋㅋㅋ송미령 썅년, 미쿡만 보면 하악 하악, ㅋㅋㅋ 정도임. -_-), 역시 압권은 "그러나 우리는 남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 가슴에 대화혼의 무형한 총검을 가져야 겠읍니다. ...... 가문에서 쫓겨나더라도 나라에서 쫓겨나지 않은 아내 며느리가 됩시다" 랄까. -_-;;

무려 대화혼을 총검처럼 사용하는 심검(....)의 여고수라 존경 받는거였나? -_-;

뭐,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시와 행동의 일치점을 찾아보기 힘든 문인들이 많아진다...
일단 마지막으로, 또 한 분의 명사이신 김동인 선생의 글을 보며 책에 대한 소개를 맺도록 하자.
(...김동인 선생...  단편 광염소나타 등으로, 내가 매우 좋아했던 작가여서... 공허함 100배. -_-;)



- 김동인, "감격과 긴장" (매일신보 1942년 1월 23일) -

우리 문단인이 시국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내선일체로 국민의식을 높여가게 된것은 만주사변 이후다. 만주사변은 [만주국]이 탄생하고 만주국 성립의 감정이 지나사변으로 부화되자 조선에선 [내선일체]의 부르짖음이 높이 울리고 내선일체의 대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다시 대동아전쟁이 발발되자 이제는 [내선일체]도 문제거리가 안되었다. 지금은 다만 [일본신민]일 따름이다. 한 천황폐하의 아래서 생사를 같이하고 영고를 함께할 한 백성일 뿐이다. [내지]와 [조선]의 구별적 존재를 허락지않는 한 민족일 뿐이다. .......

.........(감격과 긴장의 전문은 여기 )


....아놔 이쯤되면 울어야지 뭐. -_-;;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증거되고 밝혀지고 재평가되어도...
결국 이 책이 나오고 40여년이 지나는 이 시점에서도 별로 바뀌는 건 없는 것 같다.

...나도, 그리고 당신도, 이 분들 소설과 시를 열심히 외우며 공부했던, 그리고 공부할 다른 사람들도 어떤 면에서는 불행한 사람들이 맞는 것 같다.

이처럼 친일문학론은, 나에게 기성에 대한 불신을 매우 심각하게 심어주어, 그냥 무조건 비뚤어지게 만드.... (...;;;)

by 에냑 | 2008/09/15 00:38 | 내 인생의 책, 만화 | 트랙백(1)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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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붉은 나무의 다락방 서고 at 2008/10/09 10:01

제목 : 한국 문학계의 친일행적에 관한 글
충격과 공포? 한숨과 자괴? "친일문학론" ->by 에냑한국 문학계의 친일행적은이미 잘 알려졌지만 또 그만큼 쉬쉬하는 사항이죠알기 쉽게 정리된 글이 있어 트랙백해 봅니다.딱히 문학계만 깔려는건 아닙니다. (오히려 미술계쪽에 비하면 양반이라 할수 있죠)우리 역사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자료수집 차원에서 봐주시길..--------------------------------------------------------------------......more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8/09/15 01:51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있어서 상관 없었는데...김동인 선생부분에서 쓰러지고 마네요. 음. 이거 새로운 형식으로 재판되었나요? 아니라면 한자공부좀 하고 읽어야 할거 같아서요.
Commented by 에냑 at 2008/09/15 02:44
일단 93년, 그리고 2002년에 한번씩 재간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문 부분은 저도 까막눈이지만 재간된 책들은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요... ^^;;
Commented by 혼돈 at 2008/09/15 05:40
김동인과 서정주는 그야 말로 충격입니다. 특히나 서정주의 <오장(伍長) 마쓰이 송가(頌歌)> 이건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죽으라는 소리잖아요.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어떤 자들의 이익을 위해 남의 목숨을 버리라고 강요하고 또 그 수단이 되어서 지식이 있다는 시인이라는 사람이 그런 시를 쓰다니 말입니다. 더 문제는 그들의 문학을 우라나라 교육계에서 배운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우리나라는 굴욕과 찬란함이 혼재하는 역사이군요
Commented by 에냑 at 2008/09/15 13:14
아무 생각없이 책장을 파내다(...) 처음 이 책을 집어들고 읽었을 때는 정말 뒤통수 쌔리맞는 기분이었습니다. -_-;; 물론 그들의 작품이 한국 문학사에서 주요한 의의를 가진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면 이런 사실도 공평하게 가르쳐야 학생들에게 공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Commented by 사아기 at 2008/09/15 13:19
이광수야 유명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최남선 채만식은;;;; 학교에서 가르친 국사는 이거 뭐 날조도 아니고 뭥미;; 역사 공부 좀 해야겠어요. 이거 원 x팔려서;;
Commented by 에냑 at 2008/09/15 14:39
그렇게 배웠으면 그렇게 아는게 쪽 팔릴 일은 아니죠... -_-;;; 그렇게 가르친 사람들이 욕을 먹어도 먹어야지.
Commented by 한국 짱 at 2008/10/25 20:35
그나마 채만식은 광복 후에 친일해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라도 했습니다..-_-;;
딴 놈들은 그래도 잘났다는 병맛짓거리를 하고 있죠.
이광수 딸내미는 울 아빠 친일파 아니에요~하고 지랄거리고..
Commented by 성빈 at 2008/09/15 14:02
남한에 남은 문인들 중 상당수가 그런 이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편입니다.=_= 솔직히 한국 문학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 바로 이 친일문학이죠. 특히 1940년부터 이후의 문인들의 굴종의 역사들은 그야말로 쪽팔린다 수준을 넘어서서 암담할 정도지요.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이북으로 넘어간 문학가들은 또 어떻게 되었냐 하면, 대다수가 김일성에게 숙청(...)을 당하는 수모까지 격으니. 참 한국의 근대문학도 어지간히 암울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맥이 제대로 끊긴거죠.
Commented by 에냑 at 2008/09/15 14:40
그 변절의 문학사가 해방 후에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라인을 거쳐오며 아주 제대로 무르익는다는게 또 포인트... -_-;;
Commented at 2008/09/25 23:5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붉은 나무 at 2008/10/09 10:02
에냑님 트랙백 해 가겠습니다 (__)

사후승인 요청 용서하시길..
Commented by 미스트 at 2008/10/25 19:17
미당의 친일이야 유명했으니 뭐 그렇다쳐도
김동인 최남선 채만식은 몰랐네요. .................. ...............................=ㅅ=;;;
근데 왜 미당만 까발려져서 욕 열라 듣는건지... .... ....
미당 시를 좋아하지만 미당 이야기 나오면 꼭 친일 이야기가 거론되는지라 ㅠ_ㅠ
Commented by malcolmx at 2008/10/28 02:16
학교 다닐때 국어공부를 열심히 안하고 그들의 시를 외우지도 않고, 감동받지도 않았었다는 점이 왠지 다행스러워지는 군요. 혹자는 시대상황적 상황이 그렇게 몰아갔을뿐이다라고 하기도 하지만... 시대적 상황이 어떻더라도 저렇게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합니다. 독려라니!
Commented by 댁이알까요 at 2008/11/03 19:56
그당시 문인들이 그런 글을 쓸때마다 민초들 역시 '선생님이 그냥 일제가 못살게 굴어서 글 하나 써버리셨구나'

차라리..선생님들은 나름대로 과장된 형용사의 극을 달려서, 공감보다 어이없는 실소를 유발하려고 애쓰셨다는것을

특히 김동인선생의 글은 그런 조소가 담겨있다는것을 모르는 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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